반응형

한국 경제 순위를 세계와 비교해 드린 바 있었죠?

<흥미로운 관련 포스팅: 한국 경제 순위 세계와 비교>

 


2018년 기준 이탈리아의 GDP는 세계 8위 였고 한국은 세계 12위였죠.

 

GNP도 우리보다 위에 있습니다.

 

코로나와 관련해서 안타깝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확진자 숫자와 치사율이 한국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이죠.

 

물론 그 주된 원인은 일본에 이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 대비 노인의 비율 때문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 연령 분포 및 비율을 보니 80대가 40% 이상으로 거의 절반이라고 하네요.

 

결국 기저질환을 내재할만한 고연령의 70대 분들이 90퍼센트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시스템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비록 확진자가 많았지만 한국이 최저수준의 치사율을 기록하는 이유는

 

세계 의료기술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수준이나 순위에 이유가 있습니다.

 

의료기술을 종합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은 어려운 만큼 몇 가지 중요한 사안들을 살펴봐야겠네요.

 

2015년 보건의료의 질 주요지표(OECD)에서 급성 진료에 관한 치명률을 보시면

 

급성심근경색증, 뇌졸중 등의 환자 및 입원 단위 치명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선진국 수준의 의료기술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특히 한국은 외래진료에 비해 입원진료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병원 내 의료체계가 잘 만들어져 있는 것이죠.

2017년도의 분석결과(한 눈에 보는 보건, Health at a Glance)에 의하면, 몇 가지 눈여겨볼만한 점들이 있네요.

1. 급성기 진료 및 외래 약제 처방 수준의 향상

2. OECD 국가에서 대장암과 뇌졸중 진료 성과 최고 수준

3. 급성심근경색증 치명률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5(8.1%)에서 2017OECD 평균(7.5%) 수준에 근접 *원래는 최하위 수준 이었음.

4. 한국의 암 진료수준(생존률)은 대장암과 유방암이 각각 70%, 86% 정도로 OECD 평균(60.0%, 85.0%)보다 높았음

 

한국의 의료기술 수준은 OECD 국가와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의료기술과 수준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하니까요.

 

이번 바이러스 문제도 결국 의료시스템의 차이에서 큰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강국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죠.

6시간 안에 검사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활용하여 하루 22만 명을 진단할 수 있는

 

검사능력, 의료진들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확진자에 대한 끊임없는

 

모니터링을 통한 관리, 감염자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드라이브 스루(병원의 의사가 제안했다고 함),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의료봉사자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강국인 미국, 프랑스의 트럼프, 마크롱 대통령도 우리의 의료체계에 대해

 

상당한 존중심을 갖고 있을 정도니까요. 단 하나 오점이 마스크에 대한 처방과 준비가 소홀하긴 했었죠.

 

아무튼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잠시 모든 것을 참아야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겠네요.

 

확진자 수가 줄어든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다들 몸조심하세요.

반응형
반응형

난 홍상수 감독을 좋아한다.

 

그가 뻔뻔한 건 사실 같지만 그래서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홍상수라는 사람의 도덕적인 면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왜냐고?

 

“이해가 안가면 안 가는 거죠.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연극과 학생이 감독님은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를 만드세요?”

 

라고 물었을 때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영화감독 구경남은 그렇게 답했다.

 

아니, 홍상수는 그렇게 말했다.

이해가 안가시죠?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그것이 홍상수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다.

 

고순(고현정)은 홍상수에게 물었다.

 

왜 본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세요?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니까

 

나는 이 영화의 다른 줄거리는 더 이상 소개할 생각이 없다.

 

두 문장의 명대사가 이미 모든 걸 말해버렸으니까.

 

아니 사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에 대한 나의 일관된 영화평은 이렇다.

 

평론을 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비교적 다른 감독들의 작품보다 많이 봤으니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

극장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수정

강원도의 힘

 

내가 보아 온 홍상수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랬다.

 

그의 이야기들은 의도섞인 배우들의 어설프고 능청스러운 연기 속에

 

정적이고 지루한 듯 느껴지지만 정신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언제나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과 근본적인 욕망을 본인 스스로를 빗대어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

 

당신은 그럴 용기가 있나요? * 영화에는 단 한번도 안 나오는 대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효진과의 회식 자리에서 그녀 스스로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완벽해졌다고 얘기할 때의

 

건성건성 듣는 장면도 내가 꼽는 또 하나의 명장면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마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 된것 마냥.

 

당신은 어차피 또다시 불완전 해질텐데 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

 

잘 알지도 못하면서.

 

*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어떤 분의 댓글도 환영합니다.

  제 블로그의 첫 번째 악플러가 되어주세요 ^^

 

반응형
반응형

오늘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다양한 요소들

 

, 주가나 경제성장률 또는 실업자의 숫자와 같은 경제지표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통상적으로 우리는 GDP의 개념을 많이 씁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어본 말이죠?

 

그럼 GDPGNP의 뜻과 차이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GDP는 국내총생산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생산한 최종생산물의 가치를 모두 합한 액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한국사람이 100원짜리 휴대폰을 만들고

B라는 베트남사람이 100원짜리 자동차를 만들고

C라는 미국인이 100원짜리 축구공을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한국의 GDP는 300원이 됩니다.

 

그럼 지금 스페인에서 축구선수로 연봉을 받고 있는 이강인 선수의 경제활동은 어떻게 될까요?

 

GDP는 어디에 거주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의 GDP와는 관련이 없고

 

스페인의 GDP에 해당됩니다.

 

우리 이강인 선수의 경제활동을 우리나라와 연관 짓는 개념이 GNP입니다.

 

GNP는 국민총생산이라는 의미이기에 우리국민인 이강인 선수가 당연히 해당되겠죠.

 

글로벌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제 국적과 인종의 개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어서

 

GDP가 더 유의미해진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GDP는 세계 속 어느 정도의 순위일까요?

 

2018년 기준 한국의 GDP는 세계 205개국 중 12위였습니다. 근래 GDP의 연도별 변화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1위 미국 -> 중국 -> 일본 -> 독일 -> 영국 -> 프랑스 -> 인도 -> 이탈리아 -> 브라질 -> 캐나다 -> 11위 러시아

201314-> 201413-> 2015 / 201611-> 201712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 우리나라1인당 GDP가 겨우 250달러 정도였고

 

201930,000달러를 넘어섰다고 하니 그 엄청난 성장에 세계가 놀라워하고

 

한강의 기적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일본과 우리나라의 GDP를 비교해 보니 일본은 4조9천700억 달러 정도이고

 

한국은 1조6천200억달러 정도로 약 3배 차이가 나네요.

 

하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2배가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성장이 눈부시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에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고 일본에 의해 식민지의 삶을 살았던

 

대한민국이 일본과 무역전쟁을 하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세계적인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네요.

나는 1960년대에 한국과 가나의 경제상황(1인당 GNP)이 유사함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당시 한국은 제대로 만들어 내는 제품이 거의 없고 다른 나라의 경제 원조를 받고 있었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한국은 세계 14위 수준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로 발전했다. 하지만 가나의 1인당 GNP는 아직도 한국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문화’가 결정적 원인이다.

그 학자의 진단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탄소년단(BTS)이 음악으로, 봉준호감독이 영화로,

 

손흥민 선수가 축구로 우리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있고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으니까요.

한국은 항상 위기를 극복하고 강해졌습니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 발전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번 코로나 사태도 세계에서 가장 큰 위기를 제일 먼저 맞닥뜨렸지만

 

국민들 스스로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시스템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보다 우수함을 증명했지요.

 

좋은 의료체계와 정보기술을 활용한 감염자 이동경로 추적 등으로

 

비록 병에 걸린 사람은 많았지만 사망률은 가장 낮은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확진자 숫자도 점점 감소하고 있고요.

 

며칠전에는 코로나 확진자들에게 식품등의 구호물자를 집까지 전달하는 봉사활동자들이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장면과 비슷한 상황을 실제로 보았어요.

 

우리 집은 어머니 혼자 계시는데 이렇게 홀로 거주하고 계신 노인들에게 계란, , 우유 등의

 

간식이 배달되고 있는 걸 엊그제 제 눈으로 실제로 봤습니다.

 

자식의 입장으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여러가지 분야에서 문화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이 된다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날이 조만간 오겠지요. 모두들 건강조심하세요.

 

참고로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봉준호 차기작 또 다시 아카데미 3대상 수상 가능할까? 에서 다루었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오늘은 가족들과 나물 캐기에 나섰습니다. 봄 햇살인지 여름 햇살인지 구분은 안 되지만 바람은 아직도 겨울이 섞여 있었네요. 30년을 넘게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직도 저는 가끔 냉이 모양이 헷갈려서 엉뚱한 나물을 뜯기도 해요. 선천적으로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아예 사진을 찍고 정확하게 기록을 해놓으려고요.

 

1. 광대쟁이(광대나물)

우리 엄마는 항상 광대쟁이라는 명칭을 쓰세요. 왠지 광대나물보다는 광대쟁이가 더 귀엽고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아요. 광대쟁이도 냉이처럼 살짝 데쳐서 소금, 들기름, 들깨 뿌려서 무침으로 요리해서 자주 먹었어요. 그 효능을 살펴보면 운동계 질환을 다스린다고 하며 관절염, 풍 등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해요.

2. 냉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면 가장 대중적이고 사랑받는 나물이지요? 냉이 손질법은 뿌리 흙을 털어내고 말라 붙은 잎을 떼어 내면 그만이라서 엄마와 함께 자주 나물 손질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먹는 방법은 된장국으로도 하고 무침으로도 요리를 많이들 하시죠. 그런데 제가 함양에 잠시 살 적에 거기 어르신들이 새로운 요리법을 알려주셨어요. 삼겹살에 냉이를 같이 구워 먹었는데 느끼함도 잡아주고 고소해서 너무 맛있었답니다. 또 하나 특별한 냉이 요리법은 곱창전골에 함께 넣어주는 거였어요. 곱창에 냉이가 의외로 궁합이 좋습니다. 꼭 한번 해서 드셔 보세요. 냉이 효능을 살펴보니 특히 고혈압, 간 기능 회복, 변비, 폐렴 등에 좋네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폐렴에 효과 좋은 약초를 찾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던데 냉이 많이 드세요.

 

3. 벌금자리

혹시 벌금자리라고 들어 보셨나요? 우리 충청도 쪽에서는 벌금자리라고 부르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벼룩 나물이라는 명칭을 흔하게 쓰시나요?

벌금자리는 시골에서도 아주 흔한 나물은 아니었어요. 냉이는 사방천지에서 채취할 수 있지만 벌금자리는 희소성이 있었죠. 가장 흔한 섭취 방식은 깨끗이 씻고 다듬어서 밥에 된장과 함께 싸 먹는 것이었어요. 벌금자리 특유의 식감이 다른 나물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답니다. 정확하게 표현이 어려운데 까슬까슬한 물기 없는 파채를 먹는 다고 할까? 표현이 이상하죠? 너무 특별한 나물이라서 뭐라고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벌금자리 효능은 열을 내려주고 해독의 기능 등을 하는데 생리적으로 주로 소화계통에 좋은 점이 많다고 하네요. , 이제 한 가지 비슷한 게 더 떠올랐어요. 마치 솜사탕 같은 느낌이에요. 드셔 보시면 제말을 이해하실 겁니다.

 

4. 사랭이(씀바귀)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나물 사랭이입니다. 충청도에서는 사랭이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네요. 씀바귀라는 말보다 우리 엄마는 사랭이라고 말씀하세요. 같은 의미지만 아무래도 부르기가 수월해서 그렇게 부르시는 것 같아요. 요리방법은 국물요리로는 안 하세요. 무침으로만 하셨고 나물을 살짝 데쳐서 들기름과 맛소금, 깨 등을 섞어 먹으면 맛이 일품이랍니다.

저만의 노하우를 하나 드리자면, 씀바귀와 냉이를 섞어서 무쳐 드세요. 냉이의 맛은 달달하고 씀바귀 맛은 쌉쌀해서 두 가지를 섞으면 달달하며 쌉쌀합니다. 새로운 나물이 만들어져요. 올 봄에 10번도 넘게 그렇게 먹은 것 같아요. 저는 냉이무침만 먹으면 조금 질리더라고요. 씀바귀 효능은 간염, 불면증, 식욕부진, 허약체질, 축농증 등에 좋네요. 그래서 제가 봄철에 입맛이 그렇게 좋았나 봐요. 비염 있으신 분들도 씀바귀가 좋다고 하네요. , 혹시 비염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으면 제 이 글을 읽어보시고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요.

벌화분 (Bee Pollen) 먹고 30년만에 비염과 작별

 

5.  고들빼기

고들빼기도 제가 좋아하는 나물이예요. 그러고 보니 저는 약간 쌉싸름한 나물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고들빼기는 김치를 만드는 듯한 요리방법으로 빨갛게 고춧가루를 섞어 무침을 많이 해 드시죠? 김치 담그는 법만 잘 아시면 해 드시기에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네요. 고들빼기의 효능과 영양성분을 알아볼까요? 고들빼기는 심장에 좋은 작용을 하는데 불면증, A형간염, 폐렴 등에 효과가 좋아 식용과 약용으로 두루 쓰이네요.

오늘은 봄나물의 종류를 사진을 통해 알아보고 먹는 법과 효능에 대한 포스팅을 해드렸어요. 봄나물이 고혈압이나 당뇨 등에 좋다고 하니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다 드시다 보면 우리 몸도 점점 건강해지겠죠?

 

반응형
반응형

추경이란 말이 요즘 자주 언급되고 있네요. 오늘 신문기사에서도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네요. 어떤 말인지 이해되시나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11조 7,000억원)에 6조원 이상을 증액하게 된다면 코로나로 인한 추경 규모가 18조원을 넘게 될 것이다.

오늘은 추경을 하면 어떤 혜택이나 효과가 있고 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국가의 재산이지만 우리의 재산을 사용하는 셈이니까요. 올해 우리나라 1년 국가예산이 512.3조원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보시면 오늘 이야기가 좀 더 유익하겠죠?

1. 추경의 의미에 대해 알아봅시다.

추가경정예산(追加更正豫算)’를 줄여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한자 지식은 짧지만 해석하자면 추가로 새로 예산을 고친다라는 뜻이에요.

예를 들자면 여러분이 겨울 휴가에 따듯한 다낭에 놀러 갔어요. 미리 예산을 다 짜놨지만 막상 베트남에 놀러 가서 불행한 사고가 난다거나 갑자기 쇼핑을 더 하고 싶어 질 수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추경을 해야겠죠. 다음 달 카드 값 따위는 눈에 안 보이는 거죠.

참고로 예산안은 기획재정부에서 수립하고 국회가 결정하게 되어있어요.

 

2. 추경의 필요성이나 혜택을 알아볼까요?

먼저, 추경의 사례와 역사를 2012년 전 까지 10년 정도 조사해봤어요.

추경 실시 연도

추경 실시 규모

2002

41천억

2003

75천억

2004

25천억

2005

49천억

2006

22천억

2008

46천억

2009

284천억

몇 년을 제외하고 꾸준하게 추경이 이뤄졌었네요. 이제 필요성에 관해서 두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면 금방 이해되실 겁니다. 두 해의 경우를 보도록 하죠.

2008년에는 당시 유가가 워낙 비싸져 자동차를 운행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국민생활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이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추경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역대급 추경을 통해 고용 및 실직자의 직업 훈련 등 일자리 부분에 대규모 추경을 했었네요. 미국 발 금융위기로 한국경제에 큰 어려움들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대내외적인 경제 문제 해결이 1차적인 이유이자 필요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가뭄, 장마로 인한 수해 등 천재지변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하고요. , 그럼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게 되겠네요. 추경을 하면 일자리도 생기고 우리 집 기름 값도 내려가는 데 마냥 좋은 거 아닌 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네, 아닙니다.

나라살림은 국민의 세금이 수입이고 우리는 이를 세입(稅入)’이라고 해요. 그리고 세입을 사용하는 것을 세출(稅出)’이라고 하죠. 개인이나 가정 나아가 한 국가를 운영한다는 건 결국 돈이 필요한 일입니다. 개인으로 말하자면 월급, 국가로써는 충분한 세입이 바탕이 되어야 쌀이라도 한 톨 사 먹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세입이 부족한데 이러한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세출을 늘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인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겠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거나 해서 빚을 내서 재원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결국 빌린 돈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빚이고요. 그렇게 어려움에 처한 나라들은 당장 그리스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딜레마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당장 자영업 하시는 분들에게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기에 반드시 도움이 필요하고 또 한 편으로는 국가 빚의 증가속도가 너무 가파릅니다. 아무쪼록 적은 추경으로 실질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신 분들께 큰 혜택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지금 상황은 인간적 연민과 양보가 없으면 공멸할 수 밖에 없는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오늘은 특별한 다른 재료로 라볶이 만들기를 도전할게요. 라볶이에 새우를 첨가한 새로운 신메뉴입니다. 창조는 우연히 이뤄진다는 말처럼 마침 냉장고 정리를 하다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새우를 엄마가 끄집어내셨네요.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 것도 지겹고 해서 오늘은 엄마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간단한 라볶이를 만들어 보기로 할게요. 매콤 달콤 라볶이 만드는 방법 과연 성공했을 까요? 실패했을 까요?

1.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마늘, , 기름, 조림간장, 소금, 고춧가루를 한꺼번에 뿌려주세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가장 빠르게 요리하고 맛있는 결과물을 얻고 싶은 가성비 요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마늘과 파가 많이 들어가야 풍미가 더해지니까 이보다 더 많이 넣으셔도 됩니다.

 * 그리고 라면 물을 미리 올려두세요.

2. 하나씩 볶을 필요 없이 우리는 맛있게 빨리 할 거니까 1분 만에 강불에 세게 볶아줍니다.

새우요리 벌써 끝일까요? 네. 진짜 끝입니다.

3. 이제 나만의 라볶이 소스를 만들어봐요.

, 고추장, 간장, 소금, 마늘, 들기름을 넣어줘요. 물의 양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물은 조금씩 넣어가면서 간을 봐가며 늘려가는 게 좋아요. 어쨌든 지금은 약간 못생겼네요. 이게 뭔가 싶죠?

4. 라볶이 소스를 끓여요. 2분 안으로 적당히 끓기 시작하면 불을 꺼주세요. 시간이 조금 늦어지면 물이 금방 닳아 없어집니다. 이제는 조금 예뻐졌네요. 중요한 건 간이 조금 세야 해요. 왜냐면 나중에 라면을 볶으면 싱거워지니까요. 지금 이 양은 라면 3개 분량으로 했으니 참고하세요.

5. , 시간을 단축해야죠. 1번 과정에서 올린 물도 옆에서 팔팔 끓고 있죠? 이제 라면을 끄세요. 라면은 너무 익히시면 안 돼요. 약간 덜 익혀야 나중에 소스랑 다시 볶을 때 완벽한 타이밍으로 익을 테니까요. 인생도 요리도 타이밍입니다.

230초 정도 끓여준 라면의 국물을 물기 없이 쭉 빼주세요. 물기가 많으면 간을 정확하게 한 소스도 싱거워지니까요.

6. , 이제 모든 재료의 만남이 이뤄집니다. 물기 없는 라면에 소스를 위에 뿌리고 새우를 얹어주세요. 왜 새우를 따로 볶냐고 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은데 그렇게 안 하면 새우는 간이 안 배서 약간 심심한 맛일 테니까요.

저만 맛있었던 게 아니고 연세가 있으신 엄마도 엄청 맛있게 드셨어요. 라볶이에 라면만 있으면 어른들이 먹기에는 조금 부실할 텐데 새우가 들어가 있으니 식감도 좋고 뭔가 더 특별한 음식, 그리고 건강한 음식이 된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라면을 먹고 나면 항상 속이 안좋고 더부룩 한 증상이 있는데 라면을 끓인 후 국물을 버리고 요리를 하니 정말 깔끔한 맛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 남자가 만든 라볶이였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내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니 혹시 못 본 분들은 앞의 글을 읽고 오시길 당부드린다. 

호랑이 목격담 실제 증언-1 (호랑이 형님을 읽다가 문득)에 있다.

 

순간 아버지와 삼촌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마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삼촌은 호랑이 소리를 실제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음에도 보통의 짐승 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압감이 크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냥 호랑이라고 생각이 되었단다. 어쨌든 아버지와 삼촌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 선택은 위로 올라가느냐 아래로 내려가느냐가 아니라 움직일 것이냐 움직이지 않을 것이냐의 선택이었다. 그만큼 큰 공포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는 여기 가만있거라,, 아버지가 무슨 일인가 살피고 올 테니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아래로 뛰어 내려가거라

삼촌은 왜 바로 내려가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소리를 내기에는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아무튼 나중에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혹시 호랑이라면 그 위치가 대략 어디쯤인지 알아야 내려가면서 둘 다 위험에 처해지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셨다. 삼촌은 그 자리에 서서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낙엽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마저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셨다. 아버지는 자세를 낮추고 발자국 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나무와 나무 뒤로 소리의 근원지 가까이로 향하셨다. 10분쯤 후에 아버지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돌아오셔서 우리가 올라왔던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내 손을 잡아 끄셨다. 삼촌은 한마디도 물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시에 긁히거나 돌부리에 채이는 아픔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는데 아버지와 삼촌 모두 산의 저 아래로 내려왔을 때쯤에 알아채셨다고 한다.

정신없이 산을 다 내려왔을 때도 아버지와 삼촌은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가쁜 숨소리마저 죽여 가며 동네 앞에 다다랐을 때 삼촌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여쭤봤다.

아버지 뭐였어요?”

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직도 핏기가 없으셨다. 잠시 숨을 다듬으시더니 한마디를 가까스로 뱉어내셨다.

호랭이다

삼촌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다음 날에서야 이런저런 구체적인 상황을 듣기로 호랑이가 저 계곡 앞 바위 사이에서 멧돼지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크기가 거대해서 우람한 멧돼지가 고라니 만해 보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호랑이가 아마 우리 둘이 있다는 걸 눈치채셨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멧돼지를 사냥하는 과정이라서 더 이상 먹이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기에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삼촌은 그 날 이후 수십 년 간을 산에 올라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특히 그 산은 지금도 올라가지 않으신다.

제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도 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뉴스를 검색해보니 1920년대에 호랑이가 산청에서 잡혔다는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제가 살면서 경험한 미스터리 한 경험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나도 요즘 호랑이 형님 웹툰에 푹 빠져 있는데,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글을 남겨본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고 충격적으로 남아 있다. 예전에는 누구나 그렇듯 나도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시절 명절날이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늘 큰아버지 댁에 차례를 지내러 갔다. 물론 어렸을 때는 즐거운 기억이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왠지 큰집을 가는 일은 부담스럽다. 아무튼 그 놀라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 차례를 지낸 후 큰 아버지가 점심을 드시고 난 후 시작되었다. 큰 아버지 역시 직접 목격하신 건 아니고 큰 아버지의 삼촌에게 들었던 이야기라고 말씀을 전하셨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큰 아버지 댁은 경상남도 산청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박항서의 고향이라고 하는 생초다. 참고로 산청의 지리적 형태는 지리산과 인접해 있는데 지리산은 워낙 큰 줄기를 갖고 있는 거대한 산이라서 경남의 산청, 함양, 거창 등 여러 지역에 그 거대한 줄기가 뻗어져 있다. 이 일대는 특히 약초가 유명한데 특히 송이버섯이 많이 나고 상품이 좋아서 지역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쏠쏠한 도움을 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10여년 그날, 우리 큰아버지의 삼촌은 삼촌의 아버지(이하 아버지로 지칭)와 산행을 떠났다고 한다. 물론 목적은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내가 5년 전쯤에 산청의 큰아버지 댁에 산행을 해서 채취한 송이버섯으로 송이가 잘 나는 지역은 소나무 군락지에 흙은 모래흙이라서 배수가 잘되며 햇볕이 적당히 잘 드는 8부 능선 정도에 서식한다. 산꼭대기 정상 정도까지 상당한 높이를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지리산에 접한 산청 골짜기는 산세가 험하고 깊다. 정말 길을 모르고 가는 초보 산행 자는 길을 잃기 쉽고 워낙 급 비탈이 많아서 그냥 혼자 가는 일은 위험하다.

산의 5부 능선을 넘었을 때의 일이다. 삼촌과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송이를 채취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저기 솔잎과 낙엽으로 뒤덮인 볼록한(버섯이 성장하면서 낙엽을 들추고 나오면 그 부분만 부자연스럽게 볼록해짐) 산 바닥을 막대기로 해짓던 삼촌은 무언가의 사체를 발견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멧돼지였다. 깜짝 놀라 아버지를 불렀더니 아버지가 삼촌에게 다가오셨다. 산에서 나름 힘세고 포식자인 멧돼지가 이렇게 발견된 일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일은 그 멧돼지가 일부분만 발견되었다는 점이었다. 아버지 역시 그런 장면을 처음 보셨는지 도무지 의아해하셨다고 하였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겁이 없으신 편이라고 했다. 그렇게 30분을 위로 올라가면서 송이버섯을 서너개 쯤 더 채취하면서 기분이 좋아져 멧돼지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때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무지막지한 고함소리와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며 합쳐지는 순간 삼촌의 등에 순간 소름이 돋아났다고 한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겁이 없던 아버지의 눈빛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어린 삼촌도 눈치채고 말았다. 동시에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이 그렇게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삼촌은 그 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워딩이 길어진 관계로 잠시 쉬었다가 다음 편도 내 게시판의 k-culture에 연재하도록 하겠다. To be continued..

반응형
반응형

손흥민이 현재라면 황희찬은 미래다.

 

꽃으로 비유해서 손흥민이 자신의 잠재력을 만개했다면

 

황희찬은 꽃망울(아직 피어나지 않은 상태로 개화에 가까이 간 꽃의 상태)이다.

 

그래서 손흥민을 바라보면 눈부시고 황희찬을 보면 두근거린다.

 

그 미래가 너무 기대되기 때문이다.

황희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준비하던 당시

 

슈틸리케호의 명단이 공개됐다.

 

올림픽팀 주축 공격수였던 20살의 황희찬은 그렇게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20168월의 일이었다.

 

그동안 꾸준하게 부름을 받았던 황의조를 대신해서 깜짝 발탁되었기에

 

더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황희찬이 올림픽에서 보여준 수준 높고

 

꾸준한 경기력에 확신을 갖고 역습에 능한 황의조 보다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도 기술과 스피드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황희찬을 발탁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황희찬의 국가대표에서의 전반전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다.

 

부진한 경기력으로 비난을 받기 시작했고 말레시아팀과의 경기에서

 

악수를 거부하거나 키르키스스탄전에서 경기 중 사포를 시도하기도 하면서

 

여론과 축구팬들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나 역시 그 당시 황희찬의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패스의 결이 고르지 못하고 투박하며 공격수로서 세련되지 못한

 

골 결정력이 주된 이유였다.

당시 황희찬은 대다수 팬들의 눈밖에 난 선수였다.

 

그의 아래 인터뷰가 당시의 황희찬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집중했는데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는 에너지가 넘쳤지만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황희찬은 굴복하지 않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일본전 골이 한국을 놀라게 했다면 아래 장면은 세계를 놀라게 한 장면일 것이다.

세계최강 리버풀의 최고 수비수 반다이크(맨체스터시티의 경기에서 가브리에우 제주스에게

 

무려 65경기 만에 드리블을 허용한 것이 유럽 스포츠신문에 도배됐을 정도로

 

그의 수비력은 정평이 나 있음)를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기술로 따돌리고

 

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그의 눈부신 기록들도 리그 자체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황희찬이 보여준 성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예전에 내가 알던 거칠고 투박한 황소가 아니었다.

 

황소가 부드럽고 빠르다.

그래서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내가 황희찬의 기술에 놀라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미 정규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천재로 불리던 황희찬은

 

고교시절부터 프리스타일 축구 연구가JK전권(JK 아트사커 아카데미, 2010년 세계 프라스타일

 

챔피언십 준우승)을 찾아가 개인적으로 과외를 받았다고 한다

(황소감아차기 기술이라고 근래에 회자되고 있음).

 

심지어 유럽무대 진출 후에도 찾아가 기술을 갈고닦는다고 하니

 

사실 이런 경우는 결코 흔치 않은 경우로 당시 화제가 많이 되었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 체득된 기술은 실전인 아시안게임에서의 프리킥 골과

 

리버풀 전 반다이크를 돌파하는데 그대로 쓰여졌다..

내가 국가대표팀으로서 황희찬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섬세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

 

에 대한 내 판단이 잘못된 이유는 황희찬은

 

늘 위기를 반성과 훈련으로 극복하는 선수였다는 점이다.

 

그는 진보하는 선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섬세한 황소를 응원한다.

반응형
반응형

지나고 보면 희극이지만 막상 그 생활 속에 있는 사람에게 현실은 쉽지가 않죠. 노인이 젊음을 부러워하지만 젊은 우리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군생활을 마감한 사람에게 군시절은 희극이지만 젊은 장병여러분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군시절 복무기간 단축으로 한 달 정도 전역이 앞당겨진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군생활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이소식이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는 정말 뛸뜻이 기뻤었죠. 지나고 보니 추억의 한 조각입니다.

얼마 전에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공군 복무기간이 1개월 단축되어 27개월 복무하는 것으로 병역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죠. 그 이유를 살펴보니 공군의 복무기간이 사회복무요원보다 길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형평성 차원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를 예측하려면 과거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우선 역대 복무기간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볼까요?

<복무기간의 변천사>

예전의 군복무기간은 육군기준으로 36개월이었답니다.

현재는 21개월이니까 무려 15개월이나 줄어들었네요. 기간은 줄였지만 인권은 크게 성장했죠. 예전에 큰아버지 말씀에 몇 백원 몇 천원 받던 시절, 한쪽에서 월급을 받으면 저쪽에서 월급을 전부 거두어 갔다고 하네요. 복무기간도 그렇게 길고 군기도 세서 예전 분들은 정말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변화는 1959년 36개월 -> 33개월로의 변화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숫자네요.

두 번째 변화는 1962년 33개월 -> 30개월로의 변화입니다.

세 번째 변화는 비극적이네요. 30개월 -> 36개월로 변화했는데 그 이유는 북한 무장게릴라 침투사건과 관련해서 국방력 강화차원이었다고 하네요. 6개월은 저도 나름 군대 유경험자로서 그분들이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네 번째 변화는 1970년대 36개월 -> 33개월로 단축되었네요.

다섯 번째 변화는 1993년 33개월 -> 26개월이네요. 그당시 입영대상자는 엄청나게 환호했겠네요.

여섯 번째 변화는 2003년도 일입니다. 26개월 -> 24개월로 단축되었습니다.

일곱 번째 변화는 2011년 24개월 -> 21개월이네요.

고등학생 질문자(Q): 모병제가 언제쯤 될까요?

대통령(A): 모병제 전까지는 가급적 모든 분들이 군 복무를 하면서도 대신에 복무 기간은 단축해주고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에 맞는 보직을 배치해주는 노력을 선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거 정부가 18개월 안을 계획하고 논의했던 일이 있기도 해서 아마 그 부분에 대한 기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의 인터뷰내용을 마지막으로 넣고 해석은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군생활 즐겁게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