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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기업 삼성이 미술품을 부의 가치 전달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단순히 재벌들의 제태크 수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배우 손예진 조윤희가 소장한 우국원 그림이 23배나 폭등했단다.

우국원의 그림으로 작품명 우국원 `Que Sera Sera(케세라세라)` 이다.

아이, 강아지, 거북이로 보이는 동물 형상들을 의인화하여 작품으로 만든 것인데 이 작품이 경매를 통해 3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화가 우국원은 누구인가?

우국원의 그림이 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인가?

우국원 프로필을 알아보도록 하자.

* 우국원 프로필

1) 별명: 한국의 바스키아

2) 나이: 46

3) 작품 최고가: 3억원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낙찰)

4) 국내에서는 차세대 화가로 일찍이 유명세를 떨침

5) 작품 판매 기록: 202164점이 모두 낙찰되는 기록을 세움

6) 2021년 낙찰 총액: 48억원

7) 가치 상승: 서올옥션 홍콩 경매에서 'Matthew the Evangelist'가 출품되어 870만원에 낙찰되었고 3년 후 34배 가치 상승

8) 국내 최고가: 케이옥션 대구 경매에서 'Ugly Duckling'23000만원에 판매

9) 학력: 도쿄 디자이너 대학 졸업

10 이슈: 손예진 및 조윤희가 우국원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크게 가치 상승

우국원이 이번 홍콩 경매에 오를 때 추정가는 10만 홍콩달러(1500만원 내외)의 가격으로 입찰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 케세라세라(Que SeraSera)'는 특히 아시아계 컬렉터의 열띤 경합이 벌어졌고 수수료를 포한한 가격으로 189만 홍콩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3억원을 넘어서는 가격에 판매된 것이다.

케세라세라 작품에 대해 우국원 화가는 "인생 뭐 될 대로 되어도 좋다, 어떻게든 될테니까, 어쨌건 인생은 물처럼 흘러가니까"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이러한 관점을 배를 타고 가는 풍경위에 그려냈다고 한다.

우국원의 프로필 및 연혁에서 눈에 띄는 점은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2019년 경이었던 것 같다.

평소 그림을 취미로 하고 관심이 많아 관련 소식들을 관심있게 보는 편인데 당시 일본 도쿄 아트페어에서 마스다 무네아키 회장(일본 대표 서점 쓰타야 ceo)이 우국원 작품 2점을 구입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마스다 회장은 미국 천재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 작품이 지금처럼 뜨기 전부터 그가 유명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정도로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는데 한국의 우국원도 가까운 미래에 바스키아 못지않게 창의적인 발상으로 인정받을 것이며 그 이유는 우국원의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마음에 든다고 호평하며 높은 가격임에도 작품을 구매했던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에너지가 전세계적으로 뻗쳐나가고 있고 이제야 비로소 문화 예술 강국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 상당히 고무적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https://naverrrr.tistory.com/1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작품 설명

저는 그림을 잘 모르지만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자마자 찬물과 따듯한 물을 섞어 마신 것처럼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다른 의미로 희망과 좌절이 뒤섞인 느낌이라고 할까요? 희망이야 그의 그

naverrrr.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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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인공지능(AI)의 의미에 대해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네요.

주식 투자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관련주식도 관심이 있으실 것 같네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좋아하던 팬으로서 저 역시 상당한 호기심이 드는 분야입니다.

고고학이라는 말과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시대적으로 너무 다른 격차가 있기에 웬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드시죠?

 

 

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기술인 인공지능 AI의 활용 범위가 이제 우리의 과거에 까지 미치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미와 존재에 대해 심오한 학문의 길이 열린 셈이죠.

 

고고학 인공지능의 활용분야는 상당히 광범위한데요.

앞서 영화 인디애나존스를 말씀드렸지만 유적지를 탐색하거나 고대문자의 의미를 해독하는 일은 이미 성공한 사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간략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2020년 스위스 연구진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인공위성 촬영 사진을 분석하여 기원전의 러시아 기마 유목민족(스키타이인)의 무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해당 성과는 합성곱 신경망(CNN) 기술을 활용하였다.
중략....

 

저도 가끔 뉴욕타임스(NYT)를 읽어보는 편인데요.

스위스 연구진이 어떻게 기원전의 흔적도 찾기 힘든 무덤을 찾아내었는가?

이 부분이 고고학 인공지능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선은 해당 연구진이 이미 발견된 기존 무덤의 사진을 AI에 학습시킵니다.

이른 바 딥러닝이죠.

 

딥러닝 학습이 끝난 후 AI에게 인공위성 관측자료나 사진을 보여주고 분석을 시킵니다.

그러면 AI는 기존에 발견된 고대무덤의 위치나 특징, 모양 등을 토대로 현재 발견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무덤일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곳을 선정합니다.

 

그 정확도가 얼마정도 일 것 같으신가요?

놀라지 마세요.

무려 98%의 정확도로 스키타이 무덤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사실 인공지능(AI)가 특정한 얼굴을 분석하여 지명수배 된 사람을 잡아냈다는 소식을 들어보신 적이 있다라면 어쩌면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과거의 흔적은 현재 보다 희미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러한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는 기술이 고고학 인공지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과거를 분석하고 증명하고 답을 찾아내기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인류의 기원을 알아내는 일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 인간은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왜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투자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고고학 인공지능 관련주식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도 있겠네요.

참고로 인공지능 관련주는 알체라, 로로로보, 로보스타, 가온미디어, 에이디칩스등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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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는 이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내겐 너무 힘들고 싫어요.

내가 마치 민달팽이가 된 것처럼.

물론 집 안에 있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건 아니에요.



히키코모리의 비애.

 

상처받을 용기가 없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스러움 속에 삽니다.

 

하지만 집 밖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일들 투성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타인들로 가득하죠.

 

그나마 혼자라는 외로움을 버텨내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기에 민달팽이처럼 우리는 무거운 껍데기를 짊어지고 잔뜩 웅크리고 삽니다.

 

그런 우리에게 한 가지 위안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은둔형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외로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타인에게 상처받기는 싫지만 타인이 짊어지게 될 고통이 내게는 위로가 된다는 것은 저 뿐만 아닌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이중성이 아닐 까 생각됩니다.

 

히키코모리는 인간의 잠재된 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쩌면 기술의 진보에 따른 피할 수 없는 미래이기도 하고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 가다보니 홀로된다는 것은 어쩌면 제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이미 제각각 자신의 삶을 향해 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고 영원할 것 같던 가족들도 운명처럼 나와는 멀어져갔습니다.

 

하나 둘 그들이 나와 멀어졌을 때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내 예민한 성격과 까다로움이 그들이 내게서 멀어지게 만든 것인지 내가 스스로 멀어지기로 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죠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나는 피상적인 관계나 거짓된 관계가 싫었던 것 뿐이에요.

 

무의미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식상함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나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고 싶기도 했죠.

 

 

이미 비대면 사회로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고 있고 우리의 의식도 그 흐름에 따라 은둔형 외톨이의 삶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저는 비대면 사회로 증가하게 될 전세계의 히키코모리가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민달팽이 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기술의 발전이 언뜻 복잡하고 명확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확실함을 추구하고 있죠.



우리라는 애매함 보다는 너와 나라는 확실성

 

불분명한 감정의 정체 보다는 이성의 분명함

 

허점투성이인 인간보다는 새로운 종의 탄생

 

그것이 정답일지 오답일지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시간만이 내려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민달팽이 족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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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곧 우주다.

 

사실 저는 이 방식만이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쓰는 비유로 개미가 코끼리의 발등에 붙어있다 한들

 

코끼리의 형상을 감히 추측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요.

 

 

인간의 인식을 벗어난 우주의 광대함과 질서에 대해

 

오류투성이에 불과한 인간이 감히 진실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오개념을 진실인 양 믿어왔던

 

오만한 인간이 바로 엊그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니까요.

 


 

어쨌든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저의 인식에 빗대어 보면

 

그런 면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는 제 생각과 배치되네요.

 

작은 것과 큰 것은 일치한다는 게 제 생각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제 생각에 반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란 대체 무엇일까요?

 

우선 중고등학교 배운 사실들을 리마인드 해보죠.

 

아직도 머릿속에 맴도는 한 조각의 과학지식이네요.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나뉘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분된다.

 

불확정성의 원리란 여기서 말하는 전자, 원자 등과 같은 미시세계의 존재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가볍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는 즉시 눈에서 반사된 광자(빛의 입자)에 부딪혀

 

그 위치나 운동량을 측정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죠.

 

 

애당초 미시의 세계에 대해서는 측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기본이라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불완전성의 원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독일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긴 과학적 산물입니다.


그 태동은 어디서 시작했을까요?

이전의 근대과학의 근간을 이루던 뉴턴의 이론은

 

경험적으로 관측가능한 일상생활 속에서는 맞아떨어지는 듯싶었지만

 

우주적인 거시세계와 원자라는 미시세계에서 통용될 수 없는 한계에 맞부딪혔습니다.

 

다시 말해 확정성과 절대성을 기반으로 한 뉴턴 역학의 법칙은

 

더 이상 과학의 법칙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이죠.

 

이에 과학을 풍성하게 만드는 새로운 이론의 등장.

 

예컨대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과 불확정성의 원리의 하이젠베르크가 나서게 된 것이죠.

 

세상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것이라 믿었던 많은 이들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안다는 것은 전체가 아닌 부분이었을 뿐이었죠.

 

오만과 편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미가 코끼리에 붙어 있다면 그언저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인식도 그에 머물러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결국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 부분을 명확히 하고 포섭을 통한

 

포괄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비단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만이 아니라 철학, 역사 등의

 

다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일뿐이니까요.

https://hellotalk.tistory.com/83

 

특이점이 온다 뜻과 의미

‘특이점이 온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정확한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지만 커다란 변화를 마주 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인간으로서 예감이라�

hellotalk.tistory.com

철학과 과학의 접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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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언증, 과대망상, 리플리 증후군, 뮌하우젠 증후군, 정신분열, 조현병

 

심리사회적 용어가 점차 분화되면서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관한 증상 및 행동 특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리플리증후군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나요?

 

제가 이러한 심리적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알랭드롱이 열연한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 때문이었는데요.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게 하였죠.

보통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때 심장이 뛰고 맥박이 증가하며 불안한 증상을 동반하지만

리플리증후군 특징은 그러한 심리적 긴장감을 보이지 않습니다.

거짓을 진실로 믿기 때문이죠.


우리가 보통 아이들의 잘못을 야단칠 때

 

“엄마는 잘못은 용서해도 거짓말하는 건 못 참아”라고 하는데

 

리플리 증후군의 원인이나 이유를 어린 시절부터 살펴보면

 

충동적이거나 즉흥적이었던 거짓말이 내면화되고 마침내

 

자기 스스로도 거짓말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단계로 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문제 인식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거짓말을 하는 습관은 확실하게 고쳐주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뮌하우젠은 독일 군인이었던 사람으로 실제 모험하지 않았던 거짓을 꾸며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 낸 것에서 유래합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일종의 관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증상을 우리는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병명으로 사용하고 있죠.

 

일종의 허언증이며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여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아무 이상도 없는 건강한 아들에게 10여 차례의 수술을 받게 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처럼 잦은 입원을 통한 동정 및 관심 유발 행위도 뮌하우젠 증후군에 해당됩니다.

리플리증후군은 실제 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상상하여 믿으며 자기만족을 우선시 합니다.

그에 반해 뮌하우젠 증후군은 타인의 관심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현상도 앞으로 사회적 문제화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가상의 인터넷 공간에서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인격장애를 의미합니다.

어쩌면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려지는 우리의 가식적인 모습들도

그 한 가지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대망상은 사춘기 청소년의 자기중심적 사고처럼

본인의 사회적 지위나 능력 및 외모 등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사실이라고 믿는 증상입니다. 나아가 자신을 아주 대단한 인물이거나 몹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즘 많이 언급되는 정신질환 중의 하나가 조현병입니다.

조현병 뜻은 헛된 망상이나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둔감하여

공감각적인 이해를 하지 못하는 질환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정신분열증이라고 명명하였으나 단어 자체적으로 거부감이 들어 명칭을 새로이 바꾸었습니다.

망상이 병적 수준에 이르면 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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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저는 거절을 못하는 남들이 말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친구에게 빌려줬던 100원을 끝끝내 받아내지 못하고 또다시 빌려 달라 하면 거절을 못하고 100원을 내어줬습니다.

너 지난번에 내 돈 빌려 갔잖아. 갚아!”라고 말하지 못했죠.

저는 어느 순간 그런 제가 답답해졌습니다.

그것이 이번 포스팅을 하고자 하는 이유이겠네요.

 

왜 여러분은 거절을 못하시나요?

 

거절을 잘 하기 위해 우리는 거절을 못 하는 이유를 먼저 살펴봐야겠습니다.

 

*거절을 못 하는 이유

 

첫 번째는 거절을 하는 순간 그 어색함과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여러분이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적인 잠시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면 이후에 또 다른 불편함이 여러분을 찾아가는 것이죠.

미안해요. 저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거절은 나쁜 것이라는 일종의 오(잘못된)개념을 어려서부터 습관화했기 때문입니다.

희생과 무조건적 수용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학창 시절 배운 것들이 여러분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거절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내 권한일 뿐입니다.

 

세 번째는 여러분들이 일종의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욕심인 것이죠. 자기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서 남들에게 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모든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줄 만큼 우리는 완벽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완벽함에 대한 이 욕망은 남들이 자기를 평가 절하하는 순간 내면에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 거절을 잘하는 방법

 

첫 번째는 순간의 어색함을 즐겨야 합니다.

어색함을 즐긴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그 어색함의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기 때문에 결과와 관련 없이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여러분은 거절할 마땅한 권리가 있거든요.

 

거절 후 만일 상대방이 그 상황을 더욱 불편하게 악화시킨다면 그것은 상대의 잘못이기 때문에 책임은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려 하지 마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거절이 악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심리적으로 동요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하죠.

제가 사정이 있어서 다음에 할게요

미안합니다. 당신에게 특별한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모든 것이 복잡해집니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느껴지겠지만 선을 명확하게 긋고 행동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대도 언젠가는 여러분의 명확함에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들어줄 것 같기도 하고 거절할 것 같기도 한 상태가 상대 입장에서는 더욱 힘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어떠한 일에 관해서는 본인이 잘할 수 없음을 빨리 인정하세요.

저의 능력 밖이라서 사양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비록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상대편도 이해해줘야 할 책임을 동시에 갖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음을 저는 솔직하게 미리 이야기했기 때문이죠. 일종의 책임 분담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거절이 왜 중요하냐고요? 거절의 중요성은 간단합니다.

내 진짜 마음을 내 거짓됨으로 감추어서는 안 되니까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극복해 보세요.

나보다 남이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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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정확한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지만 커다란 변화를 마주 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인간으로서 예감이라고 할까요?

뭔가 설레고 두렵다는 감정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졌네요.

 

 

 

 

특이점이란 정보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어느 순간 인류라는 종족 전체 지능의 합을 넘어버리는 기술의 변화 시점을 의미합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구글의 기술 책임자)<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2045년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이미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의 결과로써 그 시작을 알렸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2019년 은퇴한 이세돌 9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참고로 그는 알파고가 은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습니다.

나는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바둑이 그렇게까지 가치가 있을 까’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 여겨지던 판단 및 사고력이 필요한 무한대의 경우의 수에 기초한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인간이 기계에 패했다는 사실은 전 인류에 놀라움을 선사하였습니다.

 

 

 

영화 루시를 보셨나요? 뇌의 지적 발달 가능성이 사실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의 뇌사용량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영화는 그러한 뇌를 100% 활용하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래 장면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나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왜 특이점을 이야기하다가 영화 이야기로 빠졌냐고요? 저는 인류의 발전과 진보의 최종적인 결과가 영화처럼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의식의 온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주를 여행하고 인류의 시작이 어디였는 지 우리는 누구인지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방식을 버려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죠.

 

2045년이라는 특이점의 시기적 예측은 무어의 법칙. , 반도체의 성능이 일정한 시기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원리에 의한다고 합니다.

기술이 생물학적 진화 속도를 따라잡아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기가 온다는 것에 저는 100% 동감합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겠네요.

인간이 기술의 진보과정에서 낙후된다면 더 고차원의 존재가 과연 기존의 존재를 필요하다고 생각할까요? 나약한 육체를 갖는 인간을 어떤 의미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요?

 

<특이점 미래>

 

특이점이 온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정보 기술이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를 넘어선다면 인간은 기계처럼 변할 것이고 결국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변화는 나아가 현실과 가상의 구분마저 무너뜨리게 되겠지요. 가상이 실제가 되고 실제가 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뇌가 cpu의 역할을 대체하는 순간 무한한 우주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그라질 육체가 없는 인간의 존재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의식의 성장을 경험할 것이고 만일 그 감정이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우주와 같이 거대한 외로움과 고독 안에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감정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체온을 그리워하며 무한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 고통은 너무 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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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건강이 재산이다 마지막 시리즈입니다. 제 글중에 벌화분(bee pollen) 비염치료와 우슬차를 이용한 허리디스크  완치 포스팅도 마찬가지였구요. ㅎㅎ

 

본론으로

긴장을 하면 마음이 경직되고 몸도 경직되죠.

* 원인이 긴장이네요. 조만간 긴장에 관해 과학적이고 심리적 관점에서 한 편의 영화를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제 지금 글에 누군가의 응답을 해준다면요. 지금은 사실 누군가 제 글을 읽고 있는 지 아닌 지 조차 모르겠거든요  

 

우선은 바닷가재의 스트레스 해소법 관해 이야기해볼게요..

스트레스리스는 스트레스가 적거나 없는 상태라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바닷가재. 나아가 탈피. 좀 잡을 수 없는 연관성 같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은 무심결에 잡지를 손에 들었어요.

바닷가재는 어떻게 자라는 가였답니다.

지금 여러분처럼 처음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었지만 조그마한 관심이 생겼대요.

마치 지금 여러분처럼요..

바닷가재는 연하고 흐물흐물하죠. 그런데 껍데기는 아주 딱딱하답니다.

비극 아니 희극은 여기서부터 생깁니다. 그 껍질은 절대 늘어나지 않는 다 네요.

그러면 바닷가재는 어찌해야 할까?

 

고통스럽게도 자라날수록 껍데기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네요. 그렇다면 왜 희극일까요?

너무나 불편한 상황인데 말이죠. 불편한 상황 즉, 스트레스는 한순간 바닷가재를 힘들게 합니다. 마치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받는 아픔처럼요.

그 순간 바닷가재는 포식자로부터 안전한 바위 밑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답니다.

마치 우리가 그 자리를 잠시 떠나 있고 싶었던 것처럼요.

그런데 다음 과정이 놀랍죠.

가재는 자신의 껍질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 내죠.

바닷가재는 이 과정을 그가 살아있는 한 계속한답니다.

탈피 즉 낡음과 고정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거죠.

 

우리는 탈피를 하고 있을까요 회피를 하고 있을까요?

비극일까요 희극일까요?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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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존감과 열등감에 관해서

법륜스님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모두 그 뿌리가 같다.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임에도 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불행한 인간의 삶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체제에서 타인과의 경쟁에 익숙해져 승리하면 자존감을 얻고 패배하면 열등감을 갖는 고통 속에 사는 것 같다. 언제나 승리할 수는 없을 뿐더러 더욱 비극적인 것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에게 내 행복을 맡기는 어리석은 점 때문이다. 잘났다는 칭찬을 들어도 잘난 체 하지 않고 부족하다는 질책을 받아도 입가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2. 원과 욕심에 관해서

괴로우면 욕심이에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자신이 괴로우면 욕심이에요.

 

짧은 말씀이지만 그 혜안에 감탄이 나온다. (바라고 원함)이라 함은 바라고 원하는 마음으로 개인의 성장과 세상의 발전을 돕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욕심이 되고 그것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리라. 중용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된다.

 

3. 선택과 책임에 관해서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요. 어떠한 선택을 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망설이는 이유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마치 내 잘못을 꾸짖으시는 듯하다. 망설였던 지난날의 내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중하게 보였겠지만 사실 책임지고 싶지 않아 비겁하게 회피한 날 들이었다.. 어른이라 함은 어떠한 미래도 당당하게 책임지는 모습일 것이다.

 

4. 부처님(싯다르타 siddhartha)의 가르침에 관해서

이는 부처님의 말씀을 법륜스님이 알아듣기 쉽게 전하신 내용이다.

부처님은 괴로움의 정체를 연구하신 분이고 궁극적으로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신 분이다. 모든 법이 공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세상 사람 모두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괴로움을 안고 산다. 부처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이미 오래전에 알려주셨지만 다만 우리가 그러고 있지 못할 뿐이다. 이를 깨우쳐주시는 법륜스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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