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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니 혹시 못 본 분들은 앞의 글을 읽고 오시길 당부드린다. 

호랑이 목격담 실제 증언-1 (호랑이 형님을 읽다가 문득)에 있다.

 

순간 아버지와 삼촌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마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삼촌은 호랑이 소리를 실제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음에도 보통의 짐승 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압감이 크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냥 호랑이라고 생각이 되었단다. 어쨌든 아버지와 삼촌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 선택은 위로 올라가느냐 아래로 내려가느냐가 아니라 움직일 것이냐 움직이지 않을 것이냐의 선택이었다. 그만큼 큰 공포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는 여기 가만있거라,, 아버지가 무슨 일인가 살피고 올 테니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아래로 뛰어 내려가거라

삼촌은 왜 바로 내려가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소리를 내기에는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아무튼 나중에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혹시 호랑이라면 그 위치가 대략 어디쯤인지 알아야 내려가면서 둘 다 위험에 처해지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셨다. 삼촌은 그 자리에 서서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낙엽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마저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셨다. 아버지는 자세를 낮추고 발자국 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나무와 나무 뒤로 소리의 근원지 가까이로 향하셨다. 10분쯤 후에 아버지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돌아오셔서 우리가 올라왔던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내 손을 잡아 끄셨다. 삼촌은 한마디도 물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시에 긁히거나 돌부리에 채이는 아픔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는데 아버지와 삼촌 모두 산의 저 아래로 내려왔을 때쯤에 알아채셨다고 한다.

정신없이 산을 다 내려왔을 때도 아버지와 삼촌은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가쁜 숨소리마저 죽여 가며 동네 앞에 다다랐을 때 삼촌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여쭤봤다.

아버지 뭐였어요?”

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직도 핏기가 없으셨다. 잠시 숨을 다듬으시더니 한마디를 가까스로 뱉어내셨다.

호랭이다

삼촌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다음 날에서야 이런저런 구체적인 상황을 듣기로 호랑이가 저 계곡 앞 바위 사이에서 멧돼지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크기가 거대해서 우람한 멧돼지가 고라니 만해 보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호랑이가 아마 우리 둘이 있다는 걸 눈치채셨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멧돼지를 사냥하는 과정이라서 더 이상 먹이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기에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삼촌은 그 날 이후 수십 년 간을 산에 올라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특히 그 산은 지금도 올라가지 않으신다.

제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도 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뉴스를 검색해보니 1920년대에 호랑이가 산청에서 잡혔다는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제가 살면서 경험한 미스터리 한 경험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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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요즘 호랑이 형님 웹툰에 푹 빠져 있는데,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글을 남겨본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고 충격적으로 남아 있다. 예전에는 누구나 그렇듯 나도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시절 명절날이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늘 큰아버지 댁에 차례를 지내러 갔다. 물론 어렸을 때는 즐거운 기억이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왠지 큰집을 가는 일은 부담스럽다. 아무튼 그 놀라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 차례를 지낸 후 큰 아버지가 점심을 드시고 난 후 시작되었다. 큰 아버지 역시 직접 목격하신 건 아니고 큰 아버지의 삼촌에게 들었던 이야기라고 말씀을 전하셨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큰 아버지 댁은 경상남도 산청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박항서의 고향이라고 하는 생초다. 참고로 산청의 지리적 형태는 지리산과 인접해 있는데 지리산은 워낙 큰 줄기를 갖고 있는 거대한 산이라서 경남의 산청, 함양, 거창 등 여러 지역에 그 거대한 줄기가 뻗어져 있다. 이 일대는 특히 약초가 유명한데 특히 송이버섯이 많이 나고 상품이 좋아서 지역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쏠쏠한 도움을 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10여년 그날, 우리 큰아버지의 삼촌은 삼촌의 아버지(이하 아버지로 지칭)와 산행을 떠났다고 한다. 물론 목적은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내가 5년 전쯤에 산청의 큰아버지 댁에 산행을 해서 채취한 송이버섯으로 송이가 잘 나는 지역은 소나무 군락지에 흙은 모래흙이라서 배수가 잘되며 햇볕이 적당히 잘 드는 8부 능선 정도에 서식한다. 산꼭대기 정상 정도까지 상당한 높이를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지리산에 접한 산청 골짜기는 산세가 험하고 깊다. 정말 길을 모르고 가는 초보 산행 자는 길을 잃기 쉽고 워낙 급 비탈이 많아서 그냥 혼자 가는 일은 위험하다.

산의 5부 능선을 넘었을 때의 일이다. 삼촌과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송이를 채취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저기 솔잎과 낙엽으로 뒤덮인 볼록한(버섯이 성장하면서 낙엽을 들추고 나오면 그 부분만 부자연스럽게 볼록해짐) 산 바닥을 막대기로 해짓던 삼촌은 무언가의 사체를 발견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멧돼지였다. 깜짝 놀라 아버지를 불렀더니 아버지가 삼촌에게 다가오셨다. 산에서 나름 힘세고 포식자인 멧돼지가 이렇게 발견된 일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일은 그 멧돼지가 일부분만 발견되었다는 점이었다. 아버지 역시 그런 장면을 처음 보셨는지 도무지 의아해하셨다고 하였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겁이 없으신 편이라고 했다. 그렇게 30분을 위로 올라가면서 송이버섯을 서너개 쯤 더 채취하면서 기분이 좋아져 멧돼지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때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무지막지한 고함소리와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며 합쳐지는 순간 삼촌의 등에 순간 소름이 돋아났다고 한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겁이 없던 아버지의 눈빛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어린 삼촌도 눈치채고 말았다. 동시에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이 그렇게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삼촌은 그 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워딩이 길어진 관계로 잠시 쉬었다가 다음 편도 내 게시판의 k-culture에 연재하도록 하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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