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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는 이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내겐 너무 힘들고 싫어요.

내가 마치 민달팽이가 된 것처럼.

물론 집 안에 있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건 아니에요.



히키코모리의 비애.

 

상처받을 용기가 없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스러움 속에 삽니다.

 

하지만 집 밖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일들 투성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타인들로 가득하죠.

 

그나마 혼자라는 외로움을 버텨내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기에 민달팽이처럼 우리는 무거운 껍데기를 짊어지고 잔뜩 웅크리고 삽니다.

 

그런 우리에게 한 가지 위안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은둔형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외로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타인에게 상처받기는 싫지만 타인이 짊어지게 될 고통이 내게는 위로가 된다는 것은 저 뿐만 아닌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이중성이 아닐 까 생각됩니다.

 

히키코모리는 인간의 잠재된 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쩌면 기술의 진보에 따른 피할 수 없는 미래이기도 하고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 가다보니 홀로된다는 것은 어쩌면 제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이미 제각각 자신의 삶을 향해 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고 영원할 것 같던 가족들도 운명처럼 나와는 멀어져갔습니다.

 

하나 둘 그들이 나와 멀어졌을 때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내 예민한 성격과 까다로움이 그들이 내게서 멀어지게 만든 것인지 내가 스스로 멀어지기로 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죠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나는 피상적인 관계나 거짓된 관계가 싫었던 것 뿐이에요.

 

무의미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식상함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나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고 싶기도 했죠.

 

 

이미 비대면 사회로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고 있고 우리의 의식도 그 흐름에 따라 은둔형 외톨이의 삶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저는 비대면 사회로 증가하게 될 전세계의 히키코모리가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민달팽이 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기술의 발전이 언뜻 복잡하고 명확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확실함을 추구하고 있죠.



우리라는 애매함 보다는 너와 나라는 확실성

 

불분명한 감정의 정체 보다는 이성의 분명함

 

허점투성이인 인간보다는 새로운 종의 탄생

 

그것이 정답일지 오답일지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시간만이 내려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민달팽이 족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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